포근해지는 봄 날씨가 찾아오면 반겨주는 건 봉우리에서 피어난 꽃들이지만, 나는 꽃들보다도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이것을 먼저 보게 된다.

길가에는 꽃들이, 사람들이 사이에서는 하품이 피어난다. 전염성이 강한 하품은 식사 후에 강하게 찾아온다. 어떻게든 잠을 깨기 위해서 커피도 마시고, 기지개도 켜보고 하지만 몽롱한 채로 오후를 보내게 된다. 벌써 춘곤증이 시작된 걸까?

춘곤증은 봄이 되면 겨울과 달리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면서 기온이 올라가 근육이 풀어지며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겨우내 찬 기온으로 움츠렸던 몸이 긴장하면서 지내다가, 따뜻한 기온을 만나면서 몸도 마음도 이내 풀리게 된다. 문득 봄이 왔다는 걸 알아차린 건, 나의 몸이었을까, 나의 마음이었을까, 생각에 잠기게 된다. 눈이 먼저 알아차린 것인지 봄이 오고 있음을 알고 마음이 먼저 긴장의 끈이 풀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쏟아지는 잠에 취해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면, 춘삼월의 기품 있는 매화는 봄의 소식을 먼저 알린 뒤 떠나간다. 이윽고 거리에는 벚꽃이 피어난다. 바람이 불면 흩날리는 꽃비들이 왼뺨을 간질거린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꽃잎으로 둘러싸이기도 하지만 떨어지는 꽃잎을 보면 양가적인 감정이 흘러넘친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주는 황홀함과 떠나보낸 꽃잎에 대한 아쉬움의 감정. 동시에 터져 나오는 감정의 끝을 마주 잡고 있다 보면 ‘내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건가?’ 싶다. 혹시 이것도 춘곤증의 증세 중 하나일까. 가을도 아닌데 찾아온 오묘한 감정의 도화선은 어디서 나온 건지 당혹스럽기만 하다.

의욕도 잃고, 쉽게 짜증이 나는 춘곤증의 계절은 봄이랑 참 어울리지 않는다. 둔감한 척하지만, 한없이 예민한 나로서는, 봄에도 가을의 센치함을 느낀다. 벚꽃이 지는 걸 보고 사람들이 아쉬워할 때, 아직 피지 못한 꽃들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고 속으로 말한다. 아쉬울 수도 있는 일에 대해 괜히 심술을 부린다. 봄에 적응하지 못한 내 몸과 내 감정을 탓하며 이건 또 봄이 부린 변덕이라며 춘곤증 탓을 한다.

앞으로는 이 춘곤증도 그리워질 것 같다. 완연하고, 따뜻한 날씨를 누리는 것도 잠시 이내 땡볕이 되고 만다. 트렌치코트도 걸칠 수 있던 날씨는, 카디건조차 덥게 느껴진다. 사계로 누릴 수 있었던 변덕스러운 계절이 두 개의 계절로만 느껴지게 되는 과정은 왜 그리도 아쉬운 걸까. 졸리고, 의욕 없게 느껴진 춘곤증도 봄이 왔다는 인사말 중 하나였는데 이젠 그 인사말도 받아보지 못할 듯하다.

춘곤증(春困症)은 또 다른 의미에서, 지구가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생긴 봄의 지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