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눌 이야기는 겨울을 지나며 뇌리에 스친 단상들에 대한 이야기다. 적어나갈 말들을 정돈할 수 있게 도와준 K와 J에게 감사한 마음을 보낸다.

매서운 날씨와 사건들이 연속되던 어느 겨울날, 나는 '다정함'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또 나만 진심이었지”

이런 밈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어른들이, 정확히는 다정한 어른들이 진심은 통한다고 그랬는데. 진심의 크기가 클수록 진심의 주인은 쉽게 부서진다. 내 마음이 일방향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 마음의 주체는 끝없는 바닥으로 가라앉게 된다. 상실감에 몸부림치는 기분이란.

배반된 진심은 허망감에 맞닿아있다. 그런 점에서 진심은 양날의 검 같다.

다정함도 이 맥락에서 유사하다. 다정함은 생각보다 소모적인 성질이라 그 총량이 정해져 있다. 나의 다정함 할당량을 모두 태우고 난 뒤에는 검은 재 같은 마음들만 남았다.

그런 마음을 지나고 있던 중 나는 디플롯 출판사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라는 책 제목을 만나게 되었다. 본문은 읽지 못했으나, 짤막한 제목 한마디에 재가 되었던 심지가 되살아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맞다. 다정함은 또 다른 다정함을 불러일으킨다. 다정함은 검은 재로 귀결되는 상황만 있는 게 아니라, 활활 타올라 선한 화력을 갖기도 한다. 내가 진심이었기에, 다정했기에 발생하는 상대의 고운 마음이 있다.

진심을 쏟는 것이 꼭 허망감으로 이어지지 않듯, 쏟은 다정함이 꼭 허사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힘든 감정이 안개가 되어, 나의 눈을 가려 최악의 결말만 상상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시 이 말에 기대어보고자 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이따금, 어쩌면 자주 몰려오는 겨울의 칼바람 같은 불행들 속에서. 나는 기필코 다정함을 잃지 않기로 다짐했다.

P.S 와닿았던 또 하나의 구절을 덧붙여 본다.

“그러니 귀한 당신. 인간을 사랑하는 일에서 멀어지지 마세요. 당신은 많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그늘이니, 자괴감을 갖지 말아요. 힘껏 살아야 강렬하고 견고한 사유를 하지요. 여기가 끝이 아니니 어서 힘을 내서 또 걸으세요. 멀리, 저 끝없는 저 길 위를."

- 신경숙, 「오래전 집을 떠날 때」 서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