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니지만, 12월이 되면 기다려지는 날이 있다. 믿는 건 없어도, 그날만큼은 산타에 대한 믿음이 커지는 날. 정확히는 산타보다도 산타가 주는 선물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크리스마스는 어린이들에게는 꿈을 이룰 수 있는 날이었고, 어른들에게는 달려오기만 한 일상의 한 템포를 늦춰주는 휴식의 날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건 모두의 기다림이기도 했다.

꿈을 이루고, 쉬어감을 제공해주는 날을 온몸으로 만끽해볼 수 있었던 때는 유럽 여행 시기였다. 39박 40일의 8개국을 돌아다니는 일정에는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포함되었다. 타지에서 새해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도 설렜지만, 한국이 아닌 곳에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흠뻑 느껴보는 일도 기대가 되었다.

겨울에 유럽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12월에 맞춰 진행되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꼽는다. 따뜻한 와인이라 말할 수 있는 글뤼바인과 진저브레드 각종 크리스마스 소품까지 만나볼 수 있는 마켓의 모습은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유럽이 겨울이 더 빛나는 이유 중 하나다. 늦은 밤까지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유럽의 겨울을 보는 것도 이 시기가 아니면 보기 힘들다.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이 날을 기다리는지, 그 마음을 느껴볼 수 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독일인들은 크리스마스 무렵에 ‘슈톨렌’이라는 빵을 만들어 먹는다 한다. 독일 현지에서는 케이크와 동시에 가장 많이 팔리는 빵이며, 크리스마스 한 달 전에 미리 만들어서 매주 한 조각씩 잘라 먹는 기다림의 빵이라고. 슈가 파우더가 하얗게 뿌려져 있어 마치, 설산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기다림이라는 감정을 빵으로 만들어 맛있게 기다릴 수 있다니! 마음을 전할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는 걸 느낀다.

기다림은 항상 기대와 함께 동반되는 감정이지만, 요즘 우리네 삶에서는 많은 기다림이 소멸되고 있다. 택배를 기다리는 시간도, 줄을 서는 시간도, 지지부진한 과정의 시간들은 다 줄여가고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는 일들로 채워지고 있다. 기다림으로 얻어내야 했던 인고의 시간이 이제는 비합리적 선택의 일종이 되었달까. 한 달 전부터 슈톨렌을 한 조각씩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일보다 크리스마스 당일에 로켓 배송으로 슈톨렌을 먹어야만 더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걸 즉시 해결해야하는 상황 속에서 기다림 속에 오는 기대감, 설렘은 저 먼발치로 날아가 버렸다.

잘 모르겠지만, 기다림을 음미할 수 있는 삶, 기다림의 반복을 견뎌낼 수 있는 삶은 대상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키워가는 일 같다. 즉각적으로 해결돼버리는 사회이고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세상이지만 우리네 삶은 3분 완성 컵라면 같은 게 아니니까. 삶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시차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각자의 시간 속에서 발행되는 시차는 그 사람의 ‘다움’을 만들어낸다. 삶을 보다 음미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하다.

슈톨렌 한 조각을 떼 먹으며 만들어가는 기다림의 시간은 오늘도 내 삶을 따뜻하게 채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