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덟. 나부끼는 바람 사이에 선 나는 by 성와니

산들거리는 바람 사이로 내리쬐는 강렬한 햇볕

2022. 10. 19.

사계절에 맞추어 4인의 계절을 담아 보내요.

📮 계절의 갈피

가을 여덟. 나부끼는 바람 사이에 선 나는

산들거리는 바람 사이로 내리쬐는 강렬한 햇볕.

아늑한 공기를 뚫고 앵앵거리는 모기의 날갯짓. 옷깃 안으로 스며드는 한기.

가을 날씨는 참으로 시시각각이다. 마치 내 마음처럼.
가을 날씨는 참으로 모순적이다. 마치 내 머릿속만큼.

새벽의 찬 공기를 맞으면 고독을 즐기고 싶어진다. 누구와도 얽매이지 않고 혼자만의 휴식을 보내며 생각에 잠기고 싶어진다. 세상에 지친 나의 두 발을 침대에 뉜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만 아무런 생각도 하기가 싫었다. 그럴 때야말로 새벽 산책은 생각을 정리하기에 참 좋았다. 하지만 현실 세계를 지내다 보면 낭만적인 여유는 삶의 뒷전으로 밀리고 만다.

인스타를 켜 친구들의 소식을 넘겨본다. 저마다의 휴식, 즐거운 여행, 행복한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부러워진다. 눈을 질끈 감고 휴대폰을 던져버렸다. 몸의 여유와 마음의 여유, 삶의 여유가 공존하는 세상은 없는 걸까. 내일은 나도 혼자 무력하게 지내지 말고 즐겁게 쉬어볼까, 다짐한다. 나도 나만의 휴식을 즐기고 있고, 나만의 길을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거라고. 힘을 내본다.

아침에 옷장을 열면 지독한 고민이 시작된다. 날씨 예보와 기온은 도움이 안 되었다. 정 없이 딱 떨어지는 숫자는 시시각각 변하는 가을바람의 농도를 평생 알지 못한다. 지금 고르는 옷이 오늘 하루를 춥게 보낼 것인지 덥게 보낼 것인지 결정한다. 가을 날씨는 항상 중간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괜찮게 하는 날은 하늘이 예쁘지 않던가, 모기가 꼬이던가, 기분이 꿀꿀했다.

사실 정말로 괜찮은 날이 하루 정도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독한 날이 더 많았기에 좋았던 하루는 나빴던 며칠에 묻혀버렸다. 하루의 여유를 챙기지 못한 나는 주말에는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 고장 난 상태로 시간을 유영했다. 이때 느껴지는 가을 공기는 참으로 아렸다. 여름에게 아직 작별도 고하지 못했는데 겨울이 와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옷깃을 여미며 발걸음만 재촉했다.

이건 일의 탓일까, 삶의 탓일까, 계절의 탓일까, 하늘의 탓일까.
하루를 탓할 대상이 없어 또다시 침묵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걱정이 많아지니 마음은 옹졸해졌다. 자기 자신도 잘 챙기지 못하는 데 타인까지 챙길 수 있을까. 친한 친구와 지인들에게도 마음을 쏟지 못한다. 아끼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쓰질 못하는구나. 머릿속은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왔다 갔다 하면서 일교차를 만들어낸다. 추워서 입에서 입김이 나나 싶었는데 정수리에서 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또, 살아야겠지. 해나가야지. 마음은 흔들려도 정신은 붙잡아본다.

나는 잠시 흔들리고 있을 뿐이고, 곧 겨울이라는 고난도 찾아오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버텨나가면 따뜻한 봄이 돌아오겠지.

📮 계절의 갈피

님은 한기를 머금은 가을 바람을 어떻게 마주하고 계신가요?

필 : 흔들리는 바람에 나도 같이 나부끼지 않으려 몸에 힘을 주다 보면 오히려 바람에 부서지곤 합니다. 유연함이 필요하달까요, 바람이 흔드는 방향에 맞춰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앞으로 뒤로 몸을 맡기다 보면 처음에는 조금 어지럽지만 이내 곧 바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의 삶, 당신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심심한 위로를 보내봅니다. 세상이 나를 잡고 흔드는데 이를 이기려 버티다 보면 세상과 맞서게 되지요. 나를 억지로 깎아내리는 세상에 대해, 태풍의 눈에 있는 것처럼 같이 흐르다 보면 조금은 평안함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슬픔보다 행복을, 눈물보다 웃음을 갈구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것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가오지만, 긍정적인 것들은 주의 깊게 찾지 않으면 쉽게 다가오지는 않으니까요. 세상이 나를 모든 방향에서 나를 괴롭혀 더 이상 빛이 없는 것 같을 때 고개를 숙여 내 발끝을 바라보면 그래도 스스로만큼은 세상에서 온전한 나의 편이었으면 합니다. 결국 우리의 삶 속에서 세상의 반의어는 ‘나’일 테니까요.

비안 :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가는 게 우리네 삶이라지만, 때론 그 흔들림에 꺾여버린 채 쉬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흔들리는 과정에 있는 나는, 나 자신도 건사하기 어려워 다른 이들을 챙길 겨를이 없거든요.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건 더더욱 싫은데, 내 마음과 다른 행동 때문에 주변인들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괜히 나부끼고 있는 저 때문에 말이죠.

한가득 바람을 넣고 나부끼는 행사 인형을 볼 때면, 외부의 힘에 흔들리는 저보다도 낫다고 느낍니다. 외부에서 오는 바람은 내가 이겨내야 하는 저항의 대상이지만, 행사 인형의 내부의 힘으로 힘차게 흔들리거든요. 힘의 방향이 어디서 오냐에 따라서도 우리네 삶은 견뎌내거나 즐기거나의 선택지를 제공받곤 합니다. 나부끼는 바람을 외부에서 받을지, 바람을 타고 노닐지. 그건 제 삶의 태도로 이어지겠네요.

시절 : 시월, 몇 번이고 발음하고 되뇌게 됩니다. 이 달이 지나면 오소소한 기운이 맴도는 겨울이 오겠지요. 두텁고 폭닥한 니트를 꺼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어느 시에서 그런 말을 보았어요. 사람이 여럿 모이면 사람들이라고 칭하지만 모든 ‘들’에는 틈이 있다고. 그 틈 덕에 숨통이 트이고 외롭기도 하나 봅니다. 새벽은 그 ‘들’의 틈이 널찍해지는 시간 같아요. 더불어 하루하루 커져가는 늦가을의 한기는 마음을 더 공허하게 만들지요. 이런 날씨엔 많은 것들이 불안하게 지나갑니다.

우리 또한 자연이기에 추위에 앙상해지기 쉬운 것 같습니다. 한기에 꺼내는 니트처럼 마음을 포근히 감싸줄 무엇이 필요한 시기 같아요.

마음도 건강도 앙상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빈번히 살피는 늦가을 보내시길.

나의 계절을 담아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