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섯. 짧은 가을을 길게 맞이하는 법 by 필

다른 계절에 비해 유난히 짧은 가을

2022. 10. 5.

사계절에 맞추어 4인의 계절을 담아 보내요.

📮 계절의 갈피

가을 여섯. 짧은 가을을 길게 맞이하는 법

내가 사랑하는 가을은 다른 계절에 비해 유난히 짧다.

가을이 온 것 같아 만끽하고자 하면 어느새 여름으로 돌아가 있고, 다시 가을이 온 것 같아 주섬주섬 가을을 꺼내다 보면 날이 추워져 겨울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나는 이 짧디짧은 가을을 길게 즐길 방법들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늘릴 수 없다면, 가을을 늘릴 수 없다면 가을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길게 늘리는 수밖에.

먼저 나를 덮고 있는 옷을 늘리기로 했다. 가을이 온다 싶으면 조금 덮더라도 누구보다 먼저 긴소매를 꺼내곤 한다.

반소매 옷에서 긴소매 옷으로 내 옷차림이 변할 때의 느낌이 좋다. 긴소매에 조금이라도 선선한 바람이 묻어날 때면 가을이 피부에 와닿는 것 같다. 반소매를 입고 있는 사람들보다 어쩌면 내가 조금 더 가을을 먼저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유난히 짙은 가을빛을 가진 옷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나는 단풍나무를 닮은 색들이 그렇게 느껴진다고 믿는다. 짙은 고동색부터 조금 밝은 갈색, 약간은 어두컴컴한 녹색, 붉게 변하기 전의 주황 단풍색, 그리고 너무 쨍하지 않은 붉은색까지. 이런 옷들을 골라 걸치며 나도 가을의 일부가 되어보곤 한다.

다음은 가을의 길어진 부분을 찾아 즐기는 것이다. 가장 크게 길어진 것은 아무래도 밤이다. 해가 저무는 시간이 빨라지고 노을빛은 조금 더 강렬해졌다. 그만큼 사람들이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의 속도가 빨라진 것 같다. 나는 그 흐름에 발을 맞추기도 보다, 그 시간을 음미하며 변화를 관찰하는 데 힘을 쏟기로 했다.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잠시 머물러 사진을 찍기도 하고, 이내 검게 변하면 얕은 빛들이 있는 곳을 찾아 바람을 살결로 느끼기도 한다. 퍽 청량해진 기분을 느끼며 주섬주섬 책을 꺼내 읽기도 한다.

이 가을도 언젠가는, 아니 조만간 나의 곁을 떠날 것이 분명하다. 예전에는 가을이 떠나는 게 싫었고, 붙잡고 싶었다. 나를 떠나면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고,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이 행복이 한결같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몇 번의 바람을 더 지난 지금, 내 생각은 달라졌다. 이 가을이 나를 떠난다고 해도 아쉽지만 싫지는 않다. 이 가을을 간직하는 마음은 두고두고 꺼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마음이 닳아질 무렵이면 또 새로운 가을이 찾아올 것이다.

가을은 짧지만, 가을을 기억하는 마음은 더 길기에.

무언가를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보다, 그 마음을 간직하는 온기가 더 길게 남기에.

📮 계절의 갈피

님은 짧은 가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시절 : 올해는 유독 여름이 길었습니다. 여름을 훌훌 털고 가을을 맞이할 채비를 하다가도 다시 고개를 빼꼼 내미는 여름에 초가을의 선선함이 희미해지곤 했어요. 그렇게 여름과 가을의 경계선에서 9월 한 달을 보냈습니다.

비안 : 참, 옷 입기 좋은 계절입니다. 오후에는 따뜻한 햇살이,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거든요. 따뜻함과 선선함이 가진 은은한 맛은 더욱 즐기고 싶은 계절임을 알립니다.

여타 그렇듯이, 너무 차갑거나 뜨거운 건 쉽게 질리고, 쉽게 가라앉기 마련인 데 은은하게 가는 온기나 선산함은 오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그 중간의 계절은 오직 가을에서만 느낄 수 있으니까요. 요즘은 봄보다 가을이 더 짧은 느낌입니다. 가을이 더 길어졌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가을이 또 귀한 줄 모르겠지요.

가을의 낙엽을 벗 삼아, 찰나를 영원처럼 보내고자 합니다.

마음을 간직하는 건, 별다른 비용이 청구되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