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는 내가 여과 없이 담깁니다.

내가 숨겨진 글은 그 억지스러움이 태가 나지요. 몇 번을 고꾸라진 봄에서 여름, 한껏 구겨진 마음으로 올해의 절반을 보냈어요. 지난 상반기의 일기에는 마음 따끔한 적바림이 적나라하게 남아있어요. 요즘은 소박한 것들로 생각을 헹궈내는 중입니다. 여름의 끝에 물렁물렁해진 복숭아나, 최근 시작한 수영 같은 것으로 말이죠. 덕분에 다소 말개진 마음으로 가을을 맞이할 수 있었어요.

옷깃 사이로 스미는 바람이 꽤 차갑습니다. 매해 이맘때쯤 바스러지는 백일홍으로 가을을 실감하곤 해요. 100일간 핀다는 이유로, 뽐내듯 백일홍이란 이름을 지닌 꽃이 속수무책으로 후드둑 떨어지는 모습을 볼 때면 괜한 아쉬움이 어립니다. 정말 여름이 갔구나- 하고 말이죠.

어제는 반년 만에 카디건을 꺼내 입었습니다. 시간의 흔적인지 쾨쾨한 악취가 나 손빨래 해 입었는데 거품과 함께 씻겨 나가는 먼지가 여름의 잔여물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듬해 여름을 꺼낼 즈음엔 또 얼마의 계절이 쌓여있을까요.

소매가 길어질수록 여름의 흔적은 스러질 테지요. 점점 깊어질 가을을 맞이할 채비를 해야겠습니다.